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 저온/사례 (문단 편집) === [[18세기]] === * [[1708년]](숙종 34년) * '''[[4월]]''' - 이 당시 [[경상도]] [[함양군|함양]]에 [[비(날씨)|비]]와 [[눈(날씨)|눈]]이 내리고, [[전라도]] [[무주군|무주]]에서 [[우박]]이 내렸으며, [[강원도]] [[원주시|원주]]에도 [[서리(날씨)|서리]]와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고, [[서울특별시|한성]] 역시 추위가 엄동(嚴冬)과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.[* [[1708년]] [[3월 22일]]'''(양력 [[4월 12일]])'''자 기록] 나열된 지역들은 모두 내륙에 있기에 내륙 위주의 저온으로 보임. 물론 갑자기 이날 하루만 추웠을 리는 없으니, 며칠 동안 이어진 [[이상 저온]] 중 유독 이날이 심했을 것이라 추정된다. * [[1709년]](숙종 35년) * '''[[4월]]''' - [[1708년|전년도]]에 이어 양력 [[4월]]에 [[이상 저온]]이 묘사되었으며, 이번에는 아예 '''날마다''' 큰 [[눈(날씨)|눈]]이 내리고 추위가 살을 에는 느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.[* [[1709년]] [[2월 26일]]'''(양력 [[4월 5일]])'''자 기록] 현대보다 평균 기온이 낮았다는 [[일제강점기]] 시절에도 [[4월]]에 며칠 연속 [[눈(날씨)|눈]]이 내리거나[* 물론 [[4월]]에 적설이 기록될 정도로 [[눈(날씨)|눈]]이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, 며칠 연속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.]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다는 묘사도 전무했다시피 한 것을 감안할 때, 당시 [[소빙하기]]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기록 중 하나. 일단 지금까지 알려진 [[서울특별시|서울]]의 [[4월]] 역대 최저 기온[* [[1972년]] [[4월 1일]] '''-4.3℃''']보다 낮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. 덧붙여 이해 [[겨울]] 역시 [[소빙하기]]에서 매우 기록적인 [[한파]]가 찾아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[[한파/대한민국 외]] 문서 참조. * [[1743년]](영조 19년) * '''[[4월]]''' - 이달에 큰 추위가 들어 '''[[눈(날씨)|눈]]이 쏟아지고 며칠이 되도록 녹지 않아 [[보리|보리(牟麥)]]가 많이 얼어죽었다'''고 한다.[* [[1743년]] [[3월 29일]]'''(양력 [[4월 23일]])'''자 기록] * [[1780년]](정조 4년) * [[11월]] - 이때 '''날씨가 매우 추워서[* 기록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.]''' 의금부와 형조에 명해 죄가 가벼운 죄수들에 한해 석방시켰다고 하며, 나머지 죄수들에게도 추위에 얼어죽을 것을 대비해 옷과 거적을 만들라는 명도 내렸다고 한다.[* [[1780년]] [[10월 27일]](양력 [[11월 23일]])자 기록][* 그 뒤에도 해를 넘긴 [[1781년]] [[겨울]]은 [[2월]] 하순에도 [[겨울|한겨울]] 추위처럼 추웠다고 언급될 정도였다. 공교롭게 100년 뒤인 [[1880년]]에도 [[11월]]부터 추위가 시작되고 [[1881년]] [[3월]]까지 추위가 풀리지 않았다고 하며, 200년 뒤인 [[1980년]]에는 [[11월]]에는 [[이상 고온]]이었지만 [[12월]]에 추위가 시작되었고 역시 [[1981년]] [[2월]] 하순~[[3월]] 상순까지 추웠다.] * [[1784년]](정조 8년) * [[3월]] - [[1783년]] [[12월]] 하순부터 갑자기 추워졌고[* [[1783년]] [[12월 7일]](양력 [[12월 30일]])자 기록. 국왕 정조가 직접 '''"[[작금]]의 날씨가 갑자기 독하게 추워졌다\"'''라고 언급한다. 작금이라는 표현을 보아 하루~이틀 전부터 날씨가 크게 뒤바뀐 듯.] 해를 넘긴 [[2월]]에도 추위가 혹심했다는 언급이 여럿 보일 정도이며, 현재의 '''[[3월]] 중순'''에도 '''"추위가 [[겨울]]과 다름없으니 진휼할 때 백성들이 추위에 떨어가며 기다리게 하지 말라\"'''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였다.[* [[1784년]] [[2월 27일]](양력 [[3월 18일]])자 기록][* 200년 뒤인 [[1984년]] [[3월]]에도 때늦은 추위로 인해 [[서울특별시|서울]] 월평균 기온이 '''2.5℃'''에 그쳤고, 마지막으로 [[3월]] 평균 기온 2℃대를 기록하였다.] * [[1796년]](정조 20년) * '''[[4월|4]]~[[5월]]''' - 이해에는 양력 [[4월|4]]~[[5월]]에 [[이상 저온]]이 묘사되어 있다. 국왕 정조가 '''"[[봄]]이 이미 저물어 가는데도 날씨가 아직껏 차서 꽃 소식이 막연하니 사관이 충분히 기록할 만한 일이다\"'''라고 하자 당시 우의정 윤시동이 "정월의 추위는 천하가 다 같다고 하니, '''꽃이 필 기운이 전혀 없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으나''' 아침에 [[북악산]]을 보니 '''또 눈(雪)빛이 있었습니다\"'''라고 발언하고 정조도 '''"[[눈(날씨)|눈]] 또한 제 철이 아니다\"'''라고 대답하였다.[* [[1796년]] [[3월 12일]]'''(양력 [[4월 19일]])'''자 기록][* 되짚어보자면 [[4월]] 중순이 다 지나가도록 꽃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인데, 여기서 이미 [[벚꽃]]이 제일 늦게 피었다는 '''[[1936년]] [[4월]]'''보다도 더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짐작할 수 있다. 현대에는 평년 기준으로 [[개나리]]와 [[진달래]]라도 [[3월]] 하순~[[4월]] 상순에 피니... 괜히 [[사관(역사)|사관]]이 기록할 만한 일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. 거기에 신하가 하는 말이 '''"원래 이 시기가 자주 추운데 꽃이 안 피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\"'''라고 대답하기까지 한다. 이어서 '''"[[북악산]]을 보니깐 새하얀 눈빛도 나던데요?\"'''라고 하자 "그래도 이 시기까지 [[눈(날씨)|눈]] 내리는 건 정상이 아니지"라고 하는 격이다.] 그리고 이 [[이상 저온]]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지, "[[봄|올봄]]은 기후가 어긋나서 '''추위가 [[겨울]]이나 다름없고, [[봄]]내 꽃이 없어 상도가 매우 어긋났다\"'''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.[* [[1796년]] [[3월 26일]]'''(양력 [[5월 3일]])'''자 기록][* 공교롭게 200년 뒤인 [[1996년]] [[4월]]에도 하순 일부를 빼고는 전부 [[이상 고온]]이 전멸하다시피 하여 월평균 기온이 '''10.2℃'''에 불과하였다. 물론 [[1996년]] [[4월]]이 [[1796년]] [[4월]]보다 월평균 기온이 낮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.][* 이로부터 몇 개월 뒤인 [[10월]]에는 월 강수량이 '''126mm,''' [[11월]] '''98mm,''' [[12월]] '''47mm'''로 시기에 걸맞지 않은 [[집중호우|폭우]]가 내린 것으로 추정되어 [[1796년]] 한 해는 상당히 특이한 양상을 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